헐렁한 청바지에 민소매를 입고, 목에는 커다란 헤드폰
그때 마른여자가 자신의 옆에 앉은 그 중년남자에게 무어라 말을 했다. 중년남자는 잘 안 들리는지 몸을 기울여 마른 여자의 얼굴에 귀를 바싹 갖다 댔다. 중년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 큰 여자는 그와중에서도 파우더 케이스를 열어 거울을 보고 있었다. 뚱뚱한 여자가 말했다. "미친년아.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밤샐거야?"
"너넨 위아래도없어? 어른들 앞에서 할 짓 안 할 짓이 따로 있지, 소란스럽게 뭔 짓이야!"
그러고 보니 저 중년남자는 어느 역에서 내리는 걸까. 어쩌면 목적지가 한참 지났는데도 마른 여자 때문에 못 내리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실컷 보호해 주고 있다가 갑자기 내리면, 처음부터 모른는 척 한 것만도 못할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마른 여자와 함께 내리면 나머지 두 여자도 따라올것이 뻔했기때문에 중년남자는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저씬 제발 꺼지세요. 계속 끼어드시는데, 이 여자한테 연정 품은 거 아니면 입 닥치시라구요"
그때 출입문 옆엣 서 있던 키 큰 남자가 말했다.
"뭐하는 짓들이야, 어른한테 싸가지 없게"
"뭐가? 뭐가 말인데? 왜 또 참견이냐고!"
"저 아저씨가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까 그렇지!"
"너네가 잘못하니까 그런 거 아냐. 사람한테 협박이나 하고."
"협박? 저년이 먼저 잘못했거든?"
"싸가지 없는 년들, 좋은 말 할 때 내려라"
나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헐렁한 청바지에 민소매를 입고, 목에는 커다란 헤드폰을 두르고 있었다. 근육질의 팔뚝 전체에는 아르누보 양식과 비슷한 도안의 문신이 덮여 있었다. 남자의 귀에 박힌 피어싱이 반짝 거렸다. 다소 불량해 보이는 인상이긴 했지만, 그 순간 남자는 꽤 멋있어 보였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두 여자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열차는 당산역에 도착했다. 남자는 뚱뚱한 여자를 내려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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